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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버블경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닮아가는 한국

1. 일본의 버블경제 시대, 일본의 라떼는

버블경제 때의 일본

 일본 마지막 전성기 시절 1980년대 중후반 일본은 겉으로 보기엔 최고로 풍요로운 시대를 누리는것처럼 보였지만 속은 텅 빈 거품같은 시절이였습니다.

버블시절 일본의 모습은 신입사원이 보너스를 봉투로 받으면 봉투가 서 있을 정도고, 취업박람회에 놀러가면 회사에서 서로 오라고 난리이고, 입사지원서만 넣어도 교통비로 1만엔~5만엔(한국 돈10만원~50만원)을 주고,
기업이 대학졸업예정자들을 로비를 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면접비만 모아서 생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생이나 취준생들을 술집같은데 데리고 가서 비싼양주를 사주며 우리회사에 지원해달라고 부탁을 하던 시대입니다. 이 시절엔 비싼술을 얻어먹어 미안한 마음에 취직을 해주는 그런 꿈같은 시대였다고 하네요.
그렇게 취직한 소중한 인재들이 퇴사하거나 다른 회사에 면접보는 불상사가 없게 해외로 파견을 보내뒀습니다.
해외파견으로 드는 비용을 감수해서라도 인재들이 그만두지 않게 조치를 취해뒀던겁니다.

이 때 일본에는 사람한명당 일자리의수가 1.5개로 사람보다 일자리의 수가 많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경제지표를 보면 일본은 1인당 GDP가 87년에 미국을 넘어선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50대 기업 순위를 보면 1위기업이 NTT라는 통신사기업인 일본기업이였습니다.
50대 기업 중 33개가 일본기업이 차지 할 정도 였습니다.

버블경제 일본의 나이트

1990년 일본 부동산의 전체 가치는 2,000조엔을 넘는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이 금액은 모든 미국 땅 값의 약4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였습니다.
아까 기업순위 1위를 차지한 NTT의 건물이 평당 3,000달라를 넘어서 버블타워라는 영광을 얻고,
도쿄의 황궁 땅값이 캘리포니아 전체 땅값보다 비쌌습니다.
말이 안되는 이 수치는 거품이 껴있는 상태였고 일본국민들은 거품이 낀 금액이라는것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일본 국민들은 각종 명품을 사기 시작했고 택시요금은 기본요금이 1만엔(약10만원)에 달했을 정도였습니다.
1만엔에다가 팁을 주겠다는 말이 없으면 승차거부를 했다고 합니다.
이때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엄청난 돈을 투자해 최고의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었고 애니메이션 강국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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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버블이 붕괴된 후 일본은?

고민하는 여자

버블은 잠깐의 달콤한 꿈이였습니다.
이것은 비정상으로 폭등한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거품이 잔뜩 낀 수치일 뿐이였습니다.
갑자기 미친 듯이 올라버린 부동산금액에 일본 서민들에게 내집마련은 다음생에나 가능한 일이 되버립니다.
국민들은 정부를 맹비난합니다.
위기감을 느낀 일본정부는 비정상적인 가격 폭등을 진정시켜야 한다고 판단하고 급하게 금리를 인상해버립니다.
금리가 올리가면 부동산 매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부동산가격이 내려갈거라 판단한겁니다.

일본정부의 잘못된 판단 중 하나는 금리를 서서히 올린 것이 아니고 갑작스럽게 많이 올려버려서
주가와 부동산가격이 점차적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닌 완전히 폭락해버립니다.
부동산가격이 폭락하자 부동산이 담보였던 은행들이 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저금리로 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서민들은 인상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서 가지고있던
부동산을 급하게 처분하게 됩니다. 부동산 가격은 더 빠르게 하락했고,
1990년 부동산 대출규제까지 생겨버리며 버블경제는 그야말로 터지게 됩니다.
대출규제정책으로 은행은 서민들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았고
그동안 빌려줬던 대출마저 빨리 상환하라고 독촉하게 됩니다.
하지만 서민들은 이미 폭락하고있는 자산들을 처분해도 대출을 갚을 수없게 되버렸고,
은행들은 줄줄이 도산하게됩니다.

이 당시 은행에 대한 악감정을 품고 은행에 복수하는 사건들도 터졌습니다.
한와은행 부행장 살해, 나고야 스미토모 은행 지점장 살해 이 두사건 다 은행원이 살해당하는 사건이였고
1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였습니다. 야쿠자들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은행원들은 방탄조끼를 입고 일해야하는 해프닝까지 발생했습니다.

1996년 이후부터는 취업난이 오게되고 기업들은 정규직채용을 줄이고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게 됩니다.
국민들은 소비를 줄이게되고 출산율도 급격히 감소 자살율은 증가합니다.

소비가 줄어든 일본인들에게 새로운 문화가 생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100엔숍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 저렴한가격대비 질좋은 옷을 공급한다해서 유니클로의 인기도 시작되었습니다.

파칭코하는 일본인들

이 시기 취업이 잘 되지않아 방치된 청년들은 집에 박혀만 있었고 이때 히키코모리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 파친코가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불운은 함께 온다고 했던가요 1995년 1월17일 강력한 고베대지진, 2011년 도후쿠 대지진
아직까지 일본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있는 후쿠시마원전사고등의 천재지변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고베대지진은 7.3 규모의 지진으로 재산피해가 10조엔에 달합니다.
단 20초동안 일어난 지진으로 순식간에 도시는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때 고베의 항만시설이 파괴되면서 지진으로 한달안에 도산한 기업만 22곳이고
2년동안 394건의 도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경기침체가 이어져 언제 경제가 회복될지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버블경제 때 일본 보러가기

3. 일본의 몰락, 남의 이야기 일까요?

일본 거리 사진

지금 일본의 상황은 20년후 대한민국 모습으로 보면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고 더 나은 부분들도 많습니다.
전자산업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일본의 기업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있고 GDP도 우리나라가 높을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노령화 인구감소 등이 매우 비슷하고 어떤면으로 보면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겪는 일을 비슷하게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지금 일본은 젊은사람들이 부족해 대학졸업자들의 취업이 매우 잘되고 있습니다.
20년전만봐도 지금 우리나라의 취업난등의 모습이 20년전 일본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이때 취업포기,결혼포기등 많은 포기하는것들이 생겼고 지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취업이 잘 되지않아 다른나라로 가서 취업을 하거나 아예 다 포기해 집에 있거나
이런현상이 나타나면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정부의정책, 기업의 채용전략은
젊은이들을 어떻게 보존해 큰 인재로 키울것인가 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볼 땐 이부분에 신경쓰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몇 년만 지나도 일본의 모습 그대로 따라갈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입니다.
일본도 바보라서 아무것도 안해서 버블을 맞은게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별 일 없다고 해서 손놓고 있을일이 아니고 지금부터 일본을 보고 미리 준비를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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